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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Wednesday

니콘 F5를 보내며...

2011.10.20 17:13

작성 : MECABOIL 조회 수 : 324


우리나라는 인류 역사에 보기 드문 강력한 중앙집권제의 왕권을 확립한 역사였다.

조선 개국 후 삼봉 정도전의 개혁은 왕권의 강화를 통해 민본주의를 실천하고자 하였다.

개국 초기, 삼봉 정도전은 강력한 토지개혁과 과거제도 등으로 지방 토호 세력들을 붕괴 시키고 왕권을 강화하였다.

조선의 왕권강화는 정도전의 혁명적 개혁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정도전은 혁명적인 맹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조선의 토대를 그려 내었다.

혁명적 왕권강화책이 시행되었지만, 사실 왕의 권력은 재상과 각 부처에 의해 철저히 견제 되었다.

재상과 각 부처의 관료들은 백성을 최상위 근본으로 삼는 유교학자들로 구성 되었다.

지방 토호세력에게 구속되었던 백성들을 중앙정부에 귀속시키고 정부는 이들 백성을 국가의 최상위 가치로 섬겨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정도전이 펼치고자한 민본정치 인 것이다.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위한 과거제도의 강화는 누구나 열심히 공부하면 관료가 될 수 있고, 관료의 세습을 인정하지 않았다.

정도전의 과거제도는 이후 조선말기 갑오개혁 때까지 우리의 역사를 바꿔 놓은 본류라 할 수 있다.

 

우리와 달리 일본은 단 한 번도 강력한 왕권제도를 갖추어 보지 못하고 현대를 맞이하였다.

일본은 쇼군의 영주가 군림하는 지방분권의 역사였다.

쇼군 즉 영주 아래에서 백성이란 개념은 존재하지를 않는다.

백성은 토지와 같이 소유하고 상속 받는 대상일 뿐인 것이다.

쇼군에게 귀속되어진 사람들에게는 공부에 열중 할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급자족을 해야하는 쇼군의 영지에서 꼭 필요한 역활을 담당하기 위해 노력한다.

여기에 우리와 달리 일본의 장인제도가 발달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일본의 쇼군에게는 영지의 자생적 운영을 위해 숙련된 장인들이 절실히 필요했다.

조선의 인재들이 출세를 위해 책을 읽고 있는 동안, 일본은 쇼군에게 꼭 필요한 장인이 되고자 노력했다.

이렇듯 쇼군의 장인제도가 오늘날 공업국 일본을 필연적 요소의 하나였다.

 

지금 세계는 디지털과 바이오가 이끄는 산업으로 진입하였다.

그러나 스티븐슨 이후 산업을 끌어 온 것은 메카닉과 일렉트로닉스 였으며, 그 뒤를 이은 것은 이 둘을 합한 메카트로닉스였다.

메카닉 기계공학의 시대에 일본은 너무도 적응을 잘 하였다.

쇼군의 장인제도와 문화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지금도 일본 국민의 36%가 제조업인 것에서 이를 알 수가 있다.

산업혁명 이후 세상의 모든 힘과 권력은 검은 연기를 내뿜는 공장에서 나오게 되었다.

세상은 전력을 다해 메카닉(기계공학)에 집중하였다.

 

내 아들은 내가 그 나이에 좋아했던 오토바이, 자동차, 카메라 등에 도무지 관심이 없다.

좋아하는 것이라곤 컴퓨터, 휴대폰, 전자수첩 등 쓸모없는 것 들이다.

내 아버지도 애완견과 화초, 돌맹이를 수집하고 알 수 없는 한문이 쓰여진 액자 등 이 또한 도무지 쓸모 없는 것들만 좋아하셨다.

집안 3대가 모두 관심이 다르다.

나는 1965년에 출생하였으니, 박정희 정권의 새마을운동 노래를 들으며 학교에 등교한 세대이다.

뒤늦게 매카트로닉스 만이 살길 임을 부르짖는 시대에 성장하였던 것이다.

어릴 적 우리나라는 못사는 나라였고, 쌀이 부족해 학교에서 분식장려 운동 강조하던 시절이었다.

 

이 시절 선진국 일본의 제품들은 나에게 동경을 심어 주었다.

영어를 읽을 줄 모르는 어린 나의 귀에 들리는 소리는 '혼다' '소니' '세이코' '니콘' 이었다.

우리나라가 삼천리 자전거를 이제 막 생산했을 때 그들은 혼다를....

오리엔트에서 벽시계를 만들고 있을 때 그들은 세이코를....

금성에서 라디오를 만들고 있을 때 그들은 소니를....

어린 눈에 메이드 인 저팬은 경이로움이었다.

 

카메라를 구입하는 대다수의 목적은 사진 일 것이다.

나 또한 카메라에서 내가 원하는 사진을 바라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나의 경우 카메라에서 사진만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메카트로닉스가 인류 최고의 가치를 부여 받던 시대에 성장한 탓인지 카메라 그 자체를 원하기도 한다.

수 많은 부품들이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정교하게 동작하는 기계를 가까이 두고 보기를 원하는 것이다.

마치 그 시대를 살아온 내 자신이 직접 만들고 완성한 것으로 착각하는 즐거움 인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의 삼천리 자전거가 높아 작은 다리를 프레임 사이에 넣은 채 페달을 밟고 달릴 그 때.

거리에 세워진 혼다의 오토바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보고 있던 그 때.

그 때 그랬다.

태양 빛을 받아 반짝이는 수 많은 기계 덩어리의 복합체 혼다.

혼다는 어린 나를 향해 저 멀리 메카트로닉스의 세계에서 손짓하고 있었다.

 

기계 미학!

그래 그렇다.

나는 이것을 기계미학이라 부르고 싶다.

메카트로닉스의 결정체 기계미학.

수 많은 부품을 설계하고 구성하여 상상을 현실로 이루어 낸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교하게 동작하는 완벽함.

바로 기계미학이다.

 

니콘의 한 자리 수 바디 즉 역대의 플래그쉽 들은 모두가 특별하며, 그 가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하다.

8년 마다 발표해 온 니콘의 플래그쉽.

이전 모델과의 인연을 끊고 완전히 새로운 설계로 모습을 드러낸 'F'.

돌아오는 8년을 위해 수 많은 날들을 보낸 엔지니어들의 땀과 숨결을 온 몸으로 받아낸 니콘의 'F'.

나와 함께 한 'F2' 'F3' 'F4' 'F5' 'F6'.

이들 하나 하나에서 경이로운 기계미학을 느낀다.

원하는 사진을 얻기 위해서 'F' 를 들기도 하지만, 한가로운 주말 미술관을 찾는 이들 처럼 'F' 를 느끼기 위해 집을 나서기도 한다.

 

어제 중고거래로 만난 사람에게 나의 'F5' 를 보내었다.

단순히 사진만을 위해서 라면, 그 사람에게 어쩌면 니콘의 'F5'가 아닌 더 좋은 선택도 있었을 것이다.

오늘 오랜 친구가 멀리 떠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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