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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Friday


며칠 전 늦은 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외수'를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엠비씨 놀러와 프로그램이었다.

반가운 마음을 넘어 TV에서 그를 본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이외수' 그 이름은 나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먹고 싸는 본능적 욕구를 제외한 나의 실체를 이루는 핵심이다.

나는 아직까지 스스로 나를 이루지 못하였고, 또 해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 나와 같다는 사실에서 위로를 받는다.

 

나는 인간을 ‘느끼고, 터득하고, 깨닫는’ 세 단계로 나누어 바라보고 있다.

나는 30년째 터득하는 단계에서 헤매고 있으며 앞으로 나아갈 가망성은 희박하다.

이런 관점에서 나를 이루는 실체의 굵은 골격은 라즈니쉬, 하야가와, 이중섭, 김용옥, 이외수이다.

톨스토이, 헤밍웨이도 황순원, 박완서, 조세희, 박범신도 모두 이외수로 대체되었다.

그런 내 실체인 이외수를 텔레비전에서 만난 것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TV 속의 이외수를 보고 있자니, ‘국민할매’ 부활의 김태원이 오버랩되었다.

80년대 부활과 들국화는 나에게 절대였다.

송골매, 조용필, 김수철도 모두 들국화와 부활로 대체되었다.

부활과 들국화를 어느 때부터인지 점차 볼 수가 없었다.

레코드판에서 CD로 다시 MP3로 세대가 바뀌어가고 있었지만 내 귓가에는 언제나 부활의 음악이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부활의 김태원이 텔레비전에 등장하였다.

지방에 살았기에 부활의 공연을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나는 텔레비전을 통해 보는 김태원의 모습에 감격했다.

김태원을 볼 수 있는 ‘남자의 자격’은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남자의 자격’에 부활의 김태원은 없었다.

‘국민할매 김태원’만 있었다.

김태원은 텔레비전에서 어려웠던 과거를 말한다.

그러나 김태원의 부활은 바로 그 어려웠던 과거에 음악적 성취를 이루었다.

"이제야 어두웠던 과거를 극복하고 행복을 찾았다"는 그에게서 더 이상 음악적 성취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불행하고 배고팠다고 말하는 바로 그 80년대의 음악에서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지난 번 ‘위대한 탄생’의 이태권과 백청강에게 준 곡을 포함하여, 최근 몇 년간 그가 발표하는 곡들은 너무도 비슷하다.

너무도 부활스러운 비슷한 패턴이다.

더 이상 창조의 가슴과 머리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김태원 스스로가 더욱 잘 알지도 모른다.

만약 모르고 있다면 불행히도 천재 김태원은 자신이 말하던 고통스러운 과거에 이미 죽은 것이다.

부활의 김태원은 딱 거기까지가 끝이었을 것이다.

 

1960년대 레드제플린을 결성하고 전설의 기타리스트로 세계를 주름잡았지만, 몇 십 년이 흐른 뒤 ‘티어즈 인 헤븐(tears in heaven)’과 함께 또 다른 음악적 성취로 세계인을 감동시키는 에릭클랩튼의 모습을 김태원에게 기대하는 것이 코미디 같은 일이었음을 알아야 했다.

얼마 전 뉴스기사로 요즘 김태원 그가 ‘기타 제작 회사’를 운영하느라 무척 바쁘다는 소식을 접했다.

부활의 김태원,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딛고 기타회사 사장 김태원으로 다시 우뚝 서다.

딱 거기까지가 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