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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Friday

스타일 - STYLE

2015.08.17 15:13

작성 : MECABOIL 조회 수 : 650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에 아버지의 사업부도로 집안이 파탄을 맞이했다.

집안이 침몰한 이후 많은 것을 겪었다.

친구들이 많았던 나는 많은 애들로부터 비열함과 알량한 모습을 보았다.

교수 아들, 선생 아들, 약국 아들, 극장 아들, 경찰서장 아들, 신문사기자 아들 등.

우리집이 파산했다고, 병신들이 나에게 하는 행동이 다른 것이다.

그런 병신들을 보고 있자니 너무 웃겼고 오히려 측은했다.

아는 것은 좃도 없고, 기껏 영어 수학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들이 나를 대하며 알랑떠는 것이었다.

병신들은 병신끼리 어울리는 것이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학교 밴드부와 유도부 꼴통 친구들은 오히려 나를 더욱 따르고 진심으로 대했다.

나도 같이 담배를 피우고, 당구장과 나이트를 드나들며 어울렸다.

또래에 비해 차원을 달리하는 지식뿐만 아니라 당구면 당구, 춤이면 춤, 싸움이면 싸움 나는 뭐든지 잘했다.

친구들은 무슨 일만 있으면 나에게 조언을 구하고 의지했다.

그 때 그랬다.

 

나는 좋은 집, 좋은 옷, 좋은 음식, 돈과 유흥 무엇도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여자에게도 관심이 없었다.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이 읽은 소설 때문에 남녀간의 사랑과 그 본질에 대해 이미 통달했던 것 같다.

그 때까지 한 번도 여자를 사귀어 본 적이 없었지만, 친구들의 연애 상담을 도맡아 해주어야 했다.

전혀 관심이 없는데도 항상 나랑 사귀지 못해서 죽네사네하는 여자들이 끊이질 않았고, 이게 너무 골치가 아팠다.

고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부터 음악다방과 나이트클럽에서 DJ를 했던 이유로 여자들이 넘쳐나던 환경 탓이기도 했을 것이다.

 

나에게 끌리는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나는 남을 의식해 꾸미지 않는다.

그대로 내 성향과 의식을 드러낸다.

절대 병신들을 따라하거나, 몇 푼 얻을려고 줄을 서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대학시절 이야기다.

2학년 과대표를 뽑을 때 이야기다.

장학금을 준다기에 과대표 선거에 나갔다.

다른 후보들 모두 '과를 위해서 헌신하겠다'는 멋진 말들을 했다.

내 차례가 되어 단상에 올라갔다.

나는 '장학금을 받으려고 나왔다. 과대표에 뽑아 준다고 해서 여러분을 위해 열심히 일할 생각은 없다.' 고 말했다.

단상에서 내려오는데 여기저기서 박수를 쳤다.

그리고 과대표에 선출되었다.

웃기지 않은가?

 

나는 미안해 하지만,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나는 도전하지만, 경쟁하지 않는다.

나는 조심하지만, 무서워하지 않는다.

나는 존중하지만, 굽신대지 않는다.

나는 배려하지만, 비위 맞추지 않는다.

나는 사과하지만, 빌지 않는다.

나는 실수하지만, 실언하지 않는다.

나는 실망시키지만, 배신하지 않는다.

 

나는 내 편과 적을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상대하기에는 인생의 낭비라 생각하고 무시하는 부류가 있을 뿐이다.

자신이 나 보다 강자라고 우쭐대는 부류다.

멍청이들 그냥 무시한다.

나는 내 자신이 결점 투성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어떤 컴플렉스도 없다.

결점은 주어진 것이지고 극복할 수 있지만, 컴플렉스는 바보들의 표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바보들의 선택이 싫고, 무섭다.

세상의 대다수가 바보인 것은 정말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다수의 선택은 따라서 대개 바보들의 선택일 확율이 무척 높다.

 

대다수의 선택은 무엇인가?

소나타, 그렌져, BMW...

서울, 수도권, 아파트...

삼성 갤럭시, 롯데마트, LG그램...

네이버,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골프, 낚시, 자전거...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유럽, 미국, 동남아, 중국 여행... 

 

나는 화제의 천만관객영화나 화제의 베스트셀러 소식을 접하면 일단 안본다.

휩쓸려 바보들의 행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섭다.

보더라도 꼭 평가를 지켜보며 몇 년 후에 보도록 한다.

이 모든 것은 내가 나도 모르게 획일화된 대중적 사고에 갇히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거대한 틀 속에서 살아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스타일 STYLE 의 어원은 스틸 STEEL 이다.

말 그대로 뜨거운 용광로에서 녹아내려 두드림으로 제련된 강철과 같이 변치 않는 존재감을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나만의 스타일이 있는가?